2026년 1월 5일 · 에세이

사랑니

다정한 그 이름

사랑니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 하는 것

예전에 누군가 내게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사랑니를 뽑는 일이 가장 무섭다고 답했다.

나의 악몽엔 다양성이 없다. 원망스럽게도 늘 비슷한 꿈을 꾸고, 그 대부분은 이가 빠지는 꿈이다. 어릴 적부터 반복해서 그래왔다. 악몽을 꾸는 것이 너무 싫어서, 꿈인 걸 알아차리고 빨리 잠에서 깨어날 수 있는 연습을 하기도 했다.

<서브스턴스>(The Substance, 2024)

영화 <서브스턴스>에서 주인공의 이빨이 빠지는 장면이 나오는데, 내가 꾸는 악몽과 정확히 일치한다. 치아 상실의 악몽에 나 혼자만 시달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반가웠다.

사랑니

스무 살 즈음,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시작된 통증은 갈수록 심해졌다. 입을 벌리면 드러난 빨간 살덩어리 속 하얀 뼈의 모습에 충격이 적잖았다. 음식을 먹을 때마다 잇몸이 씹혀 나가면서 점점 더 모습을 드러내는 그 녀석은 어느 정도 자라다가 멈출 법도 한데, 오랜 세월 동안 끈질기게 턱 신경을 밀고 들어왔다. 통증 때문에 밤잠을 설치는 날이 늘어났지만, 나는 그 이빨을 십 년 넘게 품고 있었다. 내게 사랑니를 뽑는다는 것은, 내 인생 최악의 악몽 속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일과 같았기 때문이다. 남들에게는 별것 아닌 일로 보일지는 몰라도, 2026년 마침내 치과 예약을 한 일은 내게 정말 큰 결심이었다.

사랑니를 뽑는 과정은 명료하다. 시간도 장소도 절차도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다. 예약을 잡고, 병원에 가고, 의사에게 설명을 듣고, 진료대에 눕고, 이빨이 우두둑 뽑혀 나가는 소리를 듣고, 거즈를 물고 집으로 돌아오면 된다. 그렇게 통증의 총량을 계산할 수 있고, 그 끝도 예상할 수 있다.

다정함

발치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문득, 나에게 사랑니란 그저 음식물을 씹게 해주는 도구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태어나서 입을 통해 세상을 본다. 무엇이든 입에 넣고 확인하며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운다. 그리고 치아를 통해 거친 세상을 잘게 부수고 삼킬 수 있는 크기로 바꾸며 내 것이 되게 만드는 첫 번째 경험을 한다. 나에게 치아는 삶을 다루는 감각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제3대구치에게 우리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붙여주었다. 처음 사랑을 알 무렵에 나서 그렇다거나, 사람을 애먹이는 방식이 사랑과 닮아서 그렇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래놓고서 우리는 그것이 썩고 곪는 순간까지도 “사랑”이라고 부른다. 사랑니, 그 이름은 왜인지 다정하다.

되돌아보면, 내가 진실로 두려워 한 것은 오랜시간 사랑니에 달라붙어 자라나 버린 감정이었을 것이다. 사랑니를 뽑음으로 인하여 내 삶이 무너져 내릴지도 모른다는 상실의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그의 물음은 두려운 마음을 숨기지 않아도 괜찮다는, 누구나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는 다독임처럼 느껴졌다. 그 다정함을 알게 되었기에 나는 도망치기보다, 그 두려움이 내게 무엇을 말하는지 듣기를 선택할 수 있었다. 두려운 것이 있으면 어떠한가. 언젠가 두려움이 더 이상 나를 대신해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순간이 찾아올 것을 안다.